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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A스페인⑷ 카탈루냐 음악당에 오르간이 울려퍼지면긴 여행 2022. 12. 8. 15:53
오래된 것은 세월만큼 깊은 향기를 지닌다.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카탈루냐 음악당(Palau de la musica catalana)’에 향기가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그윽한 장미의 향기일 것이다.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에서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구시가지에 다다랐다. 중세의 흔적이 남아있는 오래된 거리에는 카탈루냐 음악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름다운 조각들이 외관을 수놓은 이 건물은 건축가이자 정치가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가 설계했다. 건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곳이다.
입구로 들어서니 바르셀로나의 다른 관광지와는 달리 조금 한산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준비돼 있어서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음악당 내부를 차분하게 둘러봤다. 벽과 천장을 치장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상을 보고 있으면 아주 먼 동화나라의 음악상자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공주 옷을 입은 화려한 여인들이 등장할 것 같았다. 건축과 음악이 만나고,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카탈루냐 음악당의 오르간 연주는 잔잔하게 흐르기 시작해 웅장하게 끝난다. 음악당 2층 뒷자리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오르간 연주가 들려왔다. 공연은 아니고 미리 녹음한 음원을 틀어주는 것 같았다. 잔잔한 오르간의 선율이 음악당을 휘감자, 관람객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고요해졌다. 100년 전에도 이 객석에서 누군가가 음악을 들었겠지. 그 자리에 지금은 이 낯선 동양인이 앉아 있구나. 사라져버린 그와 나 사이에는 무수한 노래와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문득 주변에서 들뜬 얼굴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반짝이는 무대를 바라보며 마음이 애잔해질 때쯤,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쳤다. “실례지만 이제 문을 닫을 시간이에요.” 나는 서둘러 음악당을 빠져나왔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오르간이 울려퍼지면, 어쩐지 새빨간 장미꽃 향기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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