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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LA스페인⑴ 설레고 두려운, 바르셀로나까지 9989km
    긴 여행 2022. 11. 15. 19:41

     

    설레고 두려운 땅, 스페인으로 긴 여행을 떠난 건 초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2022년 10월 10일 오전 6시쯤 집에서 나와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동이 트기 전이라 하늘은 아직 어둑어둑했고 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직장을 그만두고 10년 만에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이라 낯설고 긴장됐다. 오늘 이동하는 거리는 약 1만 킬로미터. 제주에서 김포로, 김포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독일 뮌헨으로, 뮌헨에서 다시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무려 3차례 비행을 해야 한다. 

    내가 짊어진 백팩의 무게는 8.5kg. 욕심을 비우고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짐으로 추리고 또 추렸다. 유럽 항공사들은 수하물 지연 사고가 빈번하다고 해서 원래 백팩을 들고 탈 예정이었지만, 계속 걷다 보니 어깨가 너무 아파서 안되겠더라. 결국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위탁 수하물로 보내기 위해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 카운터를 찾아갔다.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탑승권을 발급할 때 코로나19 3차 백신 접종 이력을 증명해야 하는데, 쿠브 어플에 계속 오류가 생겼다.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어플을 지웠다 깔았다 수차례 반복했지만 국제증명서는 뜨지 않았다. 결국 현장에서 영문 접종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인천공항에 배치된 프린트를 이용해야 했다. 체크인 마감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대기줄이 빠지지 않아 식은땀이 흘렀다. 다급하게 서류를 출력하고 긴박하게 탑승했다.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기는 처음 타봤다. 먼저 좌석마다 담요와 베개가 놓여 있었고, 창가와 복도 사이 자리가 비어 있어서 공간이 여유로웠다. 기내식은 모두 2차례 나왔는데 맛이 없었다. 이륙하고 1시간 정도 지나자 토마토 파스타 2종과 빵, 치즈케이크가 나왔다. 여기에 김치도 함께 나왔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착륙하기 2시간쯤 전에는 샌드위치가 나왔다. 파스타보다는 나은 것 같았는데 뭐랄까. 잘 모르겠더라. 그냥 과일이 제일 맛있었다.  

     

     

    시속 800km가 넘는 속도로 하늘을 날면서 나는 설레기보다 두려웠다. 스스로 용감한 여행자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무엇보다 무탈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불안함 탓인지 틈만 나면 기상천외한 상상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베리아 반도에 쓰나미가 밀려와 물바다가 된다거나, 소매치기의 희생양이 되어 슬픈 거지가 되어버린다거나.

     

    더 큰 걱정도 있었다. 여행은 떠났지만 정작 여행자가 되지 못할까봐 겁났다. 열정이 식어버린 자리에 피어난 마음의 잡초들, 가장 예뻤던 삶의 빛깔을 잃어버린 것 같은 무력감, 삶의 결핍을 제때 채우지 못했다는 좌절감. 이런 삶의 생채기들이 굳은살로 박혀버린 마음이 다시 반짝일 수 있을까. 이런 상념이 모처럼의 설렘을 끝없이 방해했다.

     

    그러다가 나는 결국 모든 물음표를 지워버리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물었던 여행의 목적도, 답 없는 걱정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어떤 것에도 몰두하지 말고 그저 바람처럼 강물처럼 흘러가보자. 현실에 치여 보지 못했던 세상 구경이나 실컷 하자. 그래. 나는 그저 그리웠던 길 위로 돌아갈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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