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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A스페인⑹ 바르셀로나 한인마트 이식품 ㅡ 나를 살린 컵라면긴 여행 2023. 1. 2. 18:39
나의 입맛은 어릴 때부터 토종 그 자체였다. 돈가스를 먹을 때도 김치가 필수였고, 밀가루 음식은 소화가 안 돼서 피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사회생활을 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양식을 먹다 보니 점점 익숙해졌고, 심지어 파스타와 피자가 당기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번 스페인 여행으로 나는 확실히 깨닫게 됐다. 우리 것이 최고라는 신토불이의 진리를.
바르셀로나에 도착한지 불과 3일 만의 일이다. 가우디 투어를 마치고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에서 호스텔로 향하고 있었는데, 배가 고파서 쓰러질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나온 스파게티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이미 밀가루에 질려버렸다. 소심한 성격 탓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식당에도 잘 들어가지 못했다. 이날도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고는 초코바 하나가 전부였다. 빵은 도저히 못 먹겠는데 어쩌나 고민하던 찰나 구글맵에서 ‘이식품(alimentacio lee)’을 발견했다. 한식당이 아닌 한국 식료품이었다. 지친 나는 홀린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국인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 낯선 유럽에서 아직 적응하지 못한 여행자에게 이 작은 가게는 친정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익숙한 한글과 함께 평소 먹던 음식들이 아름답게 진열돼 있었다. 라면, 김치, 고추장, 소주뿐 아니라 구하기 힘들 것 같은 두부와 막걸리도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종잡을 수 없이 커지는 식욕을 다스리며, 오늘 먹을 컵라면과 김치만 조촐하게 사서 나왔다.
호스텔로 돌아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자 마음도 따뜻해졌다. 면이 다 익기도 전에 뚜껑을 열고 허겁지겁 먹었던 것 같다. 국물까지 한 방울도 남김없이 해치우자 바닥난 체력이 오뚝이처럼 일어서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몸에 안 좋다고 꺼렸던 라면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나를 살리는구나. 행복은 이렇게 가까이 있었구나! 신토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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